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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LA 한 40대 남자의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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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 할 사람이 한동안 병원을 오지 않아 궁금하던 차였는데 느닷없이 전해진 소식이 그 사람 '자살'했단다.

'미국생활... 그렇죠 뭐..'

입버릇처럼 그러더니.

사람들은 왜 그 극단적인 선택, 자살을 할까? 두가지 정도가 있겠다.

첫째, 내가 죽음으로써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이득을 주는 자기 희생이다.
나 혼자의 자살로 사랑하는 어떤 사람들이 고통이나 죽음으로부터 구조받는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목숨을 끊으려 할 것이다. 전태열처럼 노동운동을 위해 분신을 감행하거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 모든책임을 나혼자 지고 다른사람들을 보호하려고 자살한다거나 하는 예들이 있다. 최근에는 늙거나 병의 말기에 이른 환자들이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스스로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자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들을 위해 최선의 선택이라는, 전적으로 이타적인 관점에서 생각한다고 한다.

둘째, '희망' 이라는 것을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은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스스로 택한다.
원래 우울한 상태는 일종의 감정적 동면의 역할을 해서 스스로의 잘못을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울한 상태가 너무 긴 기간동안 계속되거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면 자살이라는 치명적인 행동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한다.

똑 같은 자살이라 할지라도 첫번째의 계기로 자살을 선택했다면 그래도 자살중에서는 고급에 속하겠다. 기억해 주는 사람도 있고, 나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나 가혹한 절망의 끝에 서서, 처절하게 떠밀려 자살을 선택했다면. 그는 정말 불행한 사람으로 기억되겠다.

미국에서 발버둥치며 그래도 꼭 한번 다시 일어서서 살아보려 했던 어느 사십대 한국남자의 자살..
미국에서 무슨 일이든지 해서 돈을 벌어, 사랑하는 가족들을 꼭 데려오겠다고 발버둥쳐 봤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내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점점 분간이 가지 않고, 숨통을 조여오는 위기감, 불안감.. 잠을 자는지 깨어있는지, 길고 긴 암흑의 터널속에 갇혀서 남아서 계속 살아갈 자신도 없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자신도 없고..

가장 무서운 것은 '희망을 잃는 것'이라고 했다. 삶에 대한 집착의 끈이 전혀 없겠다. 사람설고 물설은 이역만리 타국에서 희망을 잃었다면, 정말 형언키 힘든 고통의 나날이었겠지만 그렇지만 구차하게라도 살려면 살 수도 있었으련만.. 어떤 사람은 이렇게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탈출구로 빠져나가고 마네. 그렇게 꿈에 그리던 가족들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