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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학

추억의 구름과자, 담배와 이별하기

미국에 와서 난 담배를 끊었다. 건강을 위해서 끊은 게 아니었다.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로 담배를 끊었었다. 한국에서 천원짜리 담배를 피우다가 갑자기 미국에서 당시 환율 이천원의 영향으로 팔천원이 되어버린 담배에 기가 막혀서, 수입 일전도 없는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고가 기호품이어서, 그렇게 돈 때문에 끊었었다. 


담배를 피우는 이유
두가지이다. 문화적인 이유와 생리적 요구이다. 전체 흡연자의 100%가 처음 담배를 배우게 된 이유는 단 한가지, 그저 폼잡기 위해서였다. 전농중학교의 모범생이었던 상도중학교로 전학을 가서 교실 뒷쪽 아이들하고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배운 게 바로 담배였다. 바닷가 뒷편 소나무 숲, 소나무 가시 하나하나에 담배를 하나씩 끼워놓고 빼서 피우던 진짜 원조 ‘솔’담배, 남자는 당연히 피워야 하는 줄 알아서 피우고, 군대에서 ‘담배일발 장전!’에 쪼다취급 받기 싫어서 피우고, 꼬나 물고 멋지게 맛세이 하려고 피우고, 비오는 날 여자친구에게 우울한 척 이야기 할 때 피우고, 책임지라며 훌쩍이는 그녀를 두고 침대에 누워 모른 척하며 피우고, 막히는 차 안에서 시간 때우느라 한대 피우고, 그냥 심심해서 한대 피우고.. 이런 저런 유치하고 웃기는 이유로 담배를 배우고 피운다. 바닷가 소나무동산, 비가 쏟아지는 날이나 눈오는 겨울날 입김과 함께 번지는 풍성한 담배연기, 눈물나던 훈련병때 얼어붙어 곱은 손으로 한모금 빨던 구름 과자.. 이렇게 아련한 재미로 시작한 담배였었다. 이게 문화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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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라성 같은 추억의 담배들이 보인다. 나는 청자부터 익숙하다.)

그러다가.. 식후연초할 담배가 없으면 밥도 참았다가 먹고, 담배 없인 똥도 잘 나오지 않고, 담배없인 머리가 돌아가지도 않고, 담배 없인 안절부절 똥마려운 강아지새끼가 되어버리고.. 이렇게 저렇게 담배 없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다. 이런 상태의 사람들은 생리적 요구에 의해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다. 담배연기가 없이는 공부도, 일도, 노는 것도, 술도, 섹스도 안된다. 재미로 먹던 구름과자는 이제 내 생명을 담보로 날 지배하는 무서운 공포의 백색연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담배 끊은 독종새끼들하고는 평생 상종을 하지 말라더라’

담배를 끊으라는 충고에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한다. 그러나 40대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모두 금연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대부분 실패한다. ‘꼴초들도 팔구십까지 건강하게 살다 죽더라. 담배에도 체질이란게 있는거야. 난 담배가 맞아. 국가에서 그걸 금지하지 않는 게 더 나빠. 괜히 의사들이 담배에 전부 뒤집어 씌우는 거야, 지들이 잘 모르니까. 담배 끊은 독종들은 진짜로 무서운 종자들이야, 조심해야 돼..’ 담배도 끊지 못하면서 말은 드럽게 많다.


‘40 넘어서까지 담배하나 못 끊는 의지 박약하고 이기적인 사람들과는 상종을 하지 말라’ 

담배를 끊은 사람들은 이렇게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 그들은 독종이라서 담배를 끊게 아니다. 오래 살려고 안달이 나서 내 몸 건강 챙기느라 담배를 끊은 게 아니다. 사랑하는 내 가족을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담배를 끊은 것이다.


왜 담배를 끊어야 할까?
인간을 가장 단순하게 축약하면 단 두 가지 행동을 하면서 산다. 숨 들이쉬고 내뿜고(呼吸), 먹고 싸는(飮食攝取排泄) 것뿐이다. 그것의 중요한 것의 순서는 지난번에 알아보았다. 없으면 얼마나 빨리 죽느냐로 보면 된다. 첫째 공기, 둘째 물, 셋째 음식이다. 공기가 젤 중요하다.

1. 가스실, 들어가본 사람은 안다. 가스실 앞에서 이리저리 뒹굴다 숨이 턱에까지 차 오른다음에 가스실로 밀어 넣어지는 순간, 몸은 반사적으로 밖으로 뛰쳐나오려 한다. ‘아 이 가스를 계속 맡으면 몸에 해롭겠으니 빨리 나가야겠다’ 이런 생각에 의해서 몸이 튕겨지는 게 아니다. 그냥 반사적으로 몸이 튕겨진다. 두들겨 맞으며 그 안에서 군가 부르고 얼차려 받다가 맑은 공기로 탁 나왔을 때의 그 고통, 생각들 나시는가? 모든 구멍이란 구멍에선 갖가지 액체들이 사정없이 쏟아져 나온다.

2. 모든 화재현장에서 집계되는 사망자 숫자. 불난 곳에 있던 사람들이 죽었으니 당연히 불에 타 죽었겠지..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화재현장 사망자의 대부분은 화재에 의한 직접사가 아니라 대부분 연기에 의한 질식사다.

3. 참호를 손봐야 하는데 그 안에 땅벌 떼의 집이 있었다. 땅벌에 한 번 쏘였다간 거의 정신을 잃을 만큼 통증이 극심하다고 한다. 고참들 몇이서 지푸라기 더미에 불을 붙여 그것으로 벌들을 쫓는 동안 내가 망사를 대충 뒤집어 쓰고 참호로 들어가 삽질을 하고 있었는데.. ‘야 불이 너무 쎄다. 연기가 안난다!’ 외침과 동시에 불 지푸라기를 들고 있던 고참들이 일시적으로 전열이 흩어지고, 나는 아직 불길이 치솟는 지푸라기 더미를 보고 안심하고 그냥 참호속에 있었는데.. 순간 목덜미에 땅벌의 공격을 받고 말았다. 호흡이 멈춰버릴 것 같은 그 통증.. ‘야 미친넘아 연기도 없는데 빨리 튀어나와야지 멍청하게 거기에 그냥 있냐’ 그랬었다. 땅벌을 쫓고 있던 건 ‘불길’이 아니라 ‘연기’였다. 특별한 약효가 있다고 생각했던 모기향도 사실은 단순히 그 연기 때문이라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았다.


본능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 본능은 생존과 직결되는 동물의 신비로운 능력이다. 본능적으로 무엇을 회피한다는 것은 그것이 생명에 직접 악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그래서 맛있는 고기를 굽다가도 연기가 내쪽으로 오면 싫고, 고개를 돌리고 숨을 참는다. 조금이라도 들이마시면 바로 기침이 나오고 눈이 맵고 머리가 어지럽다.

우리가 처음 담배를 배울 때 한모금 들여 마시기가 참 어려웠었다. 일단 들여 마실 때 기침이 심하게 나와서 힘들었었고, 들여마시고 난 후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림 때문에 참 힘들었었다. 연기는 무슨 연기이든 들여마시면 안된다. 자연이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 줬고 그렇게 해야만 제대로 살다 죽게 되어있다. 그러나 우리는 반복 훈련을 통해 연기를 편하게 들여마시게 되었다. 생명에 지장이 있으니 들어오지 말라고 격렬하게 기침을 하던 걸, 반복훈련으로완전 무력화 시켰고, 독성물질의 유입으로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던 것도 반복훈련으로 무력화 시켰다. 극렬한 기침이나 울렁거림 어지러움증이 모두 자연이 우리에게 준 필생의 방어수단이었는데 인간은 그걸 모두 무력화시키고 말았다.

살기 위해 발현되는 본능을 무력화시키면 인체는 서서히 죽어갈 수밖에 없다. 모든 저지선을 뚫고 들어온 연기는 우리 몸 어디에나 마음대로 들쑤시고 돌아다닌다. 폐를 통해 혈액으로 유입된 담배의 독성성분은 혈관을 따라 어느 곳에나 제집 드나들듯이 돌아다닌다. 불난 집의 급작스런 다량연기의 유입은 사람을 바로 질식시켜 죽이지만 한모금 들여마시고 뱉는 연기는 사람을 서서히 죽인다. 물론 골초중에도 팔구십 거뜬하게 건강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켁켁대다가 일찍 죽는 경우가 그보다는 훨씬 더 많다.

담배가 태워질 때 발생하는 약 4000여 가지의 화합물질들의 독성이 어떻고 발암성분이 어떻고.. 니코틴의 중독이 나쁘지만 또.. 어렵다. 하도 많아서 열거하기가 힘들정도로 담배의 해악에 대해서, 담배의 유익함에 대해서 주장하는 바가 많다. “담배 속 4천여 종의 독성 물질 중 4백여 가지가 발암 물질이다. 이중 대표적인 것은 니코틴, 타르, 일산화탄소인데 중독 현상을 일으키는 니코틴은 말초 혈관 수축을 유도하고 동맥 경화를 초래한다. 또한 담배 연기를 내뿜을 때 생성되는 타르에도 치명적인 발암 물질이 30여 종이나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흡연은 구강암, 후두암, 식도암, 방광암, 간암, 신장암, 폐기종, 만성기관지염, 위궤양, 뇌출혈, 유산, 조산, 피부 노화, 협심증, 관상심장질환, 고혈압, 동맥경화 등을 발생시키는 해악의 총 집합체이다.” 아니다, 담배는 유익하다. “니코틴의 유효한 효과, 파킨슨병의 진행을 늦추고 정신분열증 환자의 환각증세를 낮춘다.”

이런 이야기들은 이제 너무나 많이 들었다. 누가 해로운 걸 모르나.. 안 끊어지니까 그렇지. 폐암으로 죽은 사람의 시커멓게 썩은 폐를 직접 보아도, 담배연기를 하얀 솜에 내뿜고 샛노랗게 변한 솜을 보아도, 콧구멍을 막고 가느다란 빨대하나로 숨을 쉬면서 공기의 소중함을 직접 체험해 보아도, 그러다가 주변에서 폐암으로 죽은 골초의 이야기를 들어도.. 그때만 섬짓할 뿐 담배는 잘 안 끊어진다.

솔직히 담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몸에 나쁘게 작용하는지 그 기전은 아직 모른다. 과학자들이 열심히 캐고 있으니 곧 속시원히 밝혀 주겠지. 난 그냥 연기를 들여마시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다. 참고로.. 옛사람들이 툭하면 쓰던 말, 氣血. 이 기와 혈이라는 용어의 원천은 무엇일까? 지금이야 별의 별 신비로운 개념들이 들어가 있지만 의학에서 이 개념이 처음 쓰일 때에는 이것은 매우 소박하고 단순했었다. 우리가 먹은 음식물이 변한 것이 血이고 우리가 들이쉰 공기를 의미하는 것이 氣였다. 그 중요하디 중요한 氣가 당신의 담배연기로 오염되어 있다. 그러니 기가 빠져 비실댈 수밖에..


왜 담배 끊기가 어려운가?

첫째, 과정에 덮치는 금단증상 때문이다. 졸리움과 짜증스러움, 두통, 우울증, 변비, 체중증가, 기침 가래, 어지러움, 집중력 감소, 불면.. 금단증상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신체가 그것에 의존하고 지배를 받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금단증상은 여기저기서 많이 본다. 여성들의 갱년기 장애, 이것도 금단증상이다. 평생 도움을 주던 여성홀몬의 공급이 갑자기 끊기면서 생기는 것이다.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져도 금단증상은 격렬하게 찾아온다. 삶을 이끌던 유일한 샘물이 말라버렸으니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으리. 고등학교 일학년때 아버지가 갑자기 기타를 없애버렸을 때에도 금단증상은 있었다. 집에 오면 한동안 안절부절. 그러나 모든 것은 세월이 약이다. 금연에 따른 금단증상은 한두달 이내에 모두 극복된다.

사람들은 담배를 끊지 못하는 가장 힘든 이유로 금단증상을 꼽는데 그건 거짓말이다. 금단증상은 핑계일 뿐이다. 금단증상을 핑계로 호시탐탐 담배를 다시 피우려는 수작을 부리는 것이다.

더 중요한 건 두번째다. 흡연에 대한 지긋지긋한 습관과 그걸 떨치지 못하는 의지문제이다. 금단증상이 모두 사라져도 흡연에 대한 충동은 훨씬 더 오래도록 지속된다. 그러다가 한순간 핑계거리가 생기면 바로 담배를 다시 피운다. 마누라 때문에, 직장상사 때문에, 사업 때문에.. 한모금 빨아들이고 훅 내뿜는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세상고난 연기와 함께 날려버리듯 내뿜는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금연을 실천하면서 평소엔 담배를 잘 절제하다가도 흡연욕구를 주체할 수 없는 때는 바로 식후의 순간과 술을 마실 때이다. 이때엔 참 참기가 힘들다. 밥숟가락을 놓기가 무섭게 밖으로 나가서 서성여야 하고, 술자리는 아예 한동안 피해야 한다. 일년쯤이 지나도 술을 마시면 흡연충동이 다시 강하게 일어난다. 이 충동이 없어지려면 적어도 5년은 지나야 한다. 그 쯤되면 설사 술김에 흡연을 하더라도 몸에서 받아주질 않는다. 기침이 나오고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리고.. 그러면 그때 회심의 미소를 띠면 된다. ‘드디어 내 몸은 정상이다.’


담배 끊어라. 한심해 보인다.
가뜩이나 그냥 들여쉬는 공기도 시원찮은데 거기에 연기까지 섞어 들여마시는 사람들을 보면 참 안타깝다. 물론 그렇게 담배를 피우고도 구십넘어까지 건강하게 살다 가는 사람도 있을터이고, 담배끊고 유난스레 몸 챙기던 사람이 오십이전에 요절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지구상 모든 생물들이 들여마시는 공기를 풀을 태워 연기로 오염시키지 않는 것, 더 이상 사람들에게 역겨운 냄새를 풍기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는 담배를 끊은 것에 만족한다. 적어도 인류에 공헌은 못할 망정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줘서야 되겠는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들여마시는 공기를 오염시키거나, 사람들이 싫어하는 냄새를 풍기는 짓을 하지 않는 것도 다 내가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손 쉬운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담배를 피우는 40대 이상 분덜. 정 끊기가 어려우면 물담배나 씹는 담배로 바꾸어 보기 바란다.
만약 그 정도까지 할 부지런이 아니라면 그냥.. 끊어라. 한심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