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연의학

개는 왜 이리 종류가 많을까? 3 - 육종

황우석 사태 때, 사건의 본질을 떠나 다른 의문 하나를 가졌던 분이 많았을 것이다. 어떻게 줄기세포, 체세포복제, 유전자조작, 이종장기 이식 등 의생명과학 연구를 ‘의대’나 유전공학과 생명공학과가 아닌 ‘수의대’가 월등히 앞서며 주도해 왔을까. 게다가 콧대 높은 의대 교수들이 수의대로 와서 꼽살이로 연구에 참가하기까지 했다.


‘수의사’라면 돼지 접붙여주고 배탈난 강아지 치료해주는 가축병원의 의사, 말은 의사지만 수준은 좀 떨어지는 ‘기술자’쯤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서울대 수의대의 혁혁한 성과는 충격이었다.

과연 이게 다 황우석이라는 개인이 워낙 똑똑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까? 아니다. 원래 생명공학 유전공학 분야에서 가장 긴 역사와 최고급의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 곳이 수의대이다. 이 분야에서 수의대는 독보적이다. 수의대가 이런 분야에서 독보적으로 기술을 축적하고 있는 까닭은 오랜 육종의 경험때문이다.


육종
식물이나 가축의 유전형질중 인간에게 유용한 것만을 골라 증진시킬 목적으로 품종을 개량하고 번식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예전보다 배가 넘는 쌀을 수확하기도 하고 씨없는 수박을 먹기도 한다. 가축에서의 육종은 모피나 고기를 더 많이 얻을 목적으로 행해졌다.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몸집을 가진 식용돼지, 거의 털로만 이루어진 양, 비정상적으로 우유를 많이 생산하는 젖소들이 다 이 육종기술 덕에 나왔다. 과학의 성과이다.

자연의 이치로 봤을 때 육종이라는 건 본능이다. 더 좋은 품질의 자손을 위해서 더 좋은 품질의 배우자를 찾아 교미를 하려는 것은 동물의 본능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능력이 뛰어난 남자에게는 여자들이 많이 꼬이고, 예쁜 여자에게 남자들이 많이 꼬이는 것도 다 이 육종의 본능 때문이다. 본인들만 육종의 본능을 가진게 아니다. 자식들의 배우자 선택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부모들의 심리도 육종의 본능이다. 본능뿐만 아니라 거기에 경험까지 어우러진 뛰어난 육종감각이다. 그래서 부모님들의 선택이 늘 옳음을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본다. 부모 반대 무릅쓰고 한 결혼치고 잘 나가는 결혼 별로 없다.


인간이 가축들에게 행한 육종도 시작단계에선 자연의 이치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저 자식들에게 배우자를 정해주는 정도라 하겠다. 기르던 가축중 대다수에 비해 우세하다고 생각되는 일부 소수 무리를 격리하여 그들끼리만 교배가 이루어지도록 했을 것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키크고 잘생기고 머리좋은 남자들과 키크고 예쁘고 머리 좋은 여자들만 따로 격리해서 그들에게만 섹스와 출산을 허용하는 행위다. 잘생긴 것들이야 좋겠지만 못생기고 키작고 머리 나쁜 사람들은 아예 섹스의 기회조차 박탈당한다. 좀 비인간적이긴 하다.

그러다가 우연히 혈통이 다른 것끼리 자연교배에 의해 태어난 새끼가 부모보다 뛰어난 것도있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집 뛰쳐나갔던 딸년이 지맘대로 결혼을 해서 손주를 낳았는데웬걸 인물이 뛰어난 격이다. 인간들은 그것을 가축들에게 시도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너 얘랑도 한번 해봐, 담엔 얘랑도 한번 해보고.. 이렇게 이계교배를 했을 때 부모보다 활동성과 생활력이 뛰어난 후손을 얻는 것을 ‘잡종강세’라고 한다. 이것이 육종의 기본개념이 되겠다.

이계교배가 갖는 효용의 경계선은 생식능력이다. 후손이 필요없다면 노새같은 동물을 막 만들어 내겠지만 후손이 필요하다면 그 경계선을 넘지 않았다. 종이 다르면 염색체간 서로 인식하질 못해 생식이 안 된다고 한다.


육종의 기원
육종의 기원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상당히 발달한 육종인 이종간교배(종이 다른 동물끼리 교배, 암말 수탕나귀 - 노새)가 기원전부터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근친교배나 계통교배 같은 것은 그보다도 훨씬 더 오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간이 개를 기르기 시작하면서부터 개들에게는 임무가 부여되었다. 주로 목축, 사냥, 경비, 짐 나르기, 썰매끌기등이다. 우리가 잘 아는 플란다스의 개 ‘파트로슈’도 우유를 운반하던 사역견이었다. 쓸모가 없는 개를 굳이 먹이를 줘가며 기를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초창기 개들은 이렇게 일하는 개들이었다. 따라서 개의 육종 역시 초기에는 용도위주로 육종이 행해졌을 것이다.

그러다 ‘품종’이라는 개념이 확립되면서 사람들은 개를 용도가 아닌 생김새로 구분하며 인식하기 시작했다. (품종의 개념은 ‘공통의 유전형질을 가진 동일한 무리들’이다. 이걸 체계화 시켜 등록을 하고 관리를 하게 된 것이 품종관리의 시작이다. 이것도 앵글로색슨들이 시작했다. 18세기말 영국에서. 앵글로 색슨.. 참 여러가지 분야에서 대단하다.)

19세기 20세기를 지나면서 인간에게 개의 개념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애완용으로 바뀌었다. 개의 품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인간들은 개의 생김새로만 개를 품평한다. 자기가 알지 못하던 모습의 개를 보면 경쟁적으로 난리가 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새로운 모양의 개를 찾아 세계 곳곳에 숨겨져 있던 품종들을 찾아내는 노력들이 이루어 졌다.

그러나 이렇게 이미 존재하는 품종의 발견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인간들은 드디어 새로운 ‘모양’의 개를 탄생시키기 위해 육종을 하기 시작했다. ‘용도개량’이 아닌 ‘새로운 모양을 위한’ 육종이다 보니 자연스레 같은 품종간의 근친교배나 계통교배는 제외되었다. 새로운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전혀 계통이 다른 것들끼리 교배를 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들도 자기가 싫어하는 상대나 낯선 상대와는 교접을 하지 않으려 한다. 암만 발정난 암캐라 하더라도 상대를 가린다는 말이다. 이 개와 저 개를 합치면 꽤나 독특한 새로운 종이 나올 것 같은데, 이 둘이 서로 교접을 하지 않으려 한다. 이거 문제다. 그래서 개발된 기술이 인공수정이다.



→ 개는 왜 이리 종류가 많을까? 1 – 그러게
→ 개는 왜 이리 종류가 많을까? 2 – 이상한 삽살개
→ 개는 왜 이리 종류가 많을까? 3 – 육종
→ 개는 왜 이리 종류가 많을까? 4 – 자연을 경외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