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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학

몽유병과 가위눌림

몸의 피로
몸을 많이 쓰면 몸이 피로하다. 이건 근육에 피로물질(젖산)들이 쌓이면서 나타나는 느낌이다. 근육에 쌓인 유산을 분해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누워서 편히 쉬면 유산은 탄산가스와 물로 분해되어 없어지고, 근육은 움직임에 필요한 에너지를 모아 이후의 활동에 대비한다. 이게 바로 ‘피로가 풀렸다’는 것이다. 물론 누워서 쉬기만 했다고 근육의 피로가 말끔히 풀리는 것은 아니지만 좌우간 어느정도는 풀린다.


정신의 피로
신경을 많이 쓰면 정신이 피곤하다. 이건 신경전달 물질들과 호르몬이 뇌 안에서 대사되면서 뇌에 피로물질들이 쌓이면서 나타나는 느낌이다. 뇌가 피로물질을 분해하는 방법도 근육과 비슷하다. 뇌가 쉬면 된다. 그러나 이건 그리 간단하지 않다. 뇌가 쉬려면 특별한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잠이다. 동물들이 잠을 자는 건 바로 뇌의 피로를 풀기 위해서이다. 물론 근육의 피로도 잠을 자야만 완전히 풀린다. 즉, 잠은 몸과 마음의 휴식시간이다.


잠의 구분
과학자들은 우리의 잠을 두가지로 구분해 놓았다. NREM(Non-Rapid Eye Movement)수면과 REM수면이다. 눈알이 빨리 움직이냐 그렇지 않느냐로 잠을 두가지로 구분한다.. 어떻게 그 기기묘묘한 잠의 세계를 눈깔의 움직임만으로 구분했을까? 비록 이름은 이렇게 무식하게 붙어 있지만 그래도 인간의 잠을 이해하는데 이 구분이 소용이 있다. 간단히 정의하면, 비렘수면은 ‘뇌’가 자는 것이며, 렘수면은 ‘몸’이 자는 것이다.

비 렘수면
비렘수면시에 ‘뇌의 활동은 정지’하며 ‘근육활동은 보통’정도로 유지된다. 뇌는 의식의 스위치를 내리고 최대한 휴식을 취하며 다음날을 준비한다. 그 사이 신체는 간단한 유지보수를 한다. 따라서 홀몬분비, 호흡, 심박이 보통정도로 유지된다. 이 잠을 푹 자는 걸 ‘숙면’이라고 한다.

렘수면
렘수면시에 ‘근육활동은 정지’하며 ‘뇌의 활동은 보통’정도로 유지된다. 뇌는 사유활동은 거의 하지 않으면서 어지럽게 쌓인 정보를 분류 처리한다. 그 사이 몸은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최대한 박차를 가하여 대대적인 유지보수를 한다. 따라서 홀몬분비와 호흡, 심박이 최고로 상승한다.

(이 두가지가 90분정도의 주기로 교대로 반복된다고 한다. 아예 한가지를 길게 나가면 충분한 휴식을 더 취할 수 있을텐데도 이 두가지가 귀찮게 교대한다. 왜일까? 비렘수면만 길게 나가면 수면 중 체온이 너무 내려간다. 그래서 몸을 각성시키는 렘수면 상태와 교대를 하게 한다. 렘수면만 길게 나가면 체온이 너무 상승한다. 그래서 몸을 냉각시키는 비렘수면과 교대를 하게 한다. 참으로 기가 막힌 조절기전이다.)

(꿈의 80%를 REM 수면시에 꾼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꿈을 꾸는지 아닌지를 본인외에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뇌파가 움직이고 있다고 그게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게다가 꿈이란 생물학적으로 ‘수면시 정신활동’이라고 했는데 꿈의 20%는 뇌의 스위치가 내려져 있는 비렘수면 동안 꾼다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꿈을 과학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곳에 있다. 재미있는 딴지이긴 하지만 주제와는 동떨어진 것이므로 그냥 접는다.)


잠을 잘 땐 몸과 정신이 따로 놀기도 한다
재미도 없는 잠의 구분 얘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언급한 이유는 정신과 육체와의 묘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자 보자.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우리는 이미 잘 안다. 아주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정신과 육체는 얽혀있다. 그러나 잠을 잘때만은 이 관계가 약간 어긋난다. 즉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정신이 완전히 스위치를 내리고 쉴 때에도 육체가 약간 움직이고 있고, 육체가 완전히 스위치를 내리고 쉴 때에도 정신은 약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절묘한 메커니즘이다. 인류의 생존과 관계되는 방어기전의 한 부분이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자는 동안에도 우리의 경계 시스템은 작동하고 있다. 만약 자면서 정신과 육체가 똑같이 스위치를 내리고 쉰다면? 공격을 받고 바로 멸종한다. 이렇게 수면시 뇌와 근육의 어긋나는 건 이유가 있다. 이런 인체의 순기능적 방어시스템으로서가 아닌 이상한 어긋남도 있다. 정신과 육체의 톱니바퀴가 이유없이 잠시 어긋나는 것이다. 두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 의식의 스위치는 내려져 있는데 근육이 움직인다.
둘째, 사유활동이 시작되었는데 근육은 여전히 안 움직인다.


몽유병
첫째, 의식의 스위치는 내려져 있는데 근육이 움직이는 상태를 보자. 신체는 깨어있지만 정신은 아주 깊이 잠들어있는 상태, 즉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가졌었던 병이다. 또 최근 기데보라가 가진 것으로 잠시 의심했던 몽유병이 바로 첫번째의 경우이다. (기데보라는 몽유병 아니다. 열쇠를 찾아주고 올라간 게 맞다) 그 현상이 진행중인 때는 물론 다음날 깨어난 후에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데 이는 기본적인 뇌의 활동은 있되 의식이나 사유활동은 정지된 상태에서 발생한 일이기 때문이다. 돌아다닐만큼 정신은 깬 상태이지만 활동의 내용을 스스로 알지 못할 만큼 잠든 상태가 혼합되어 있는 이상한 경우이다.

‘물 마시러 내려왔니?’
‘응’

이래 놓고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몽유병은 애교로 봐줄 수 있다. 하지만 꿈속의 행동 그대로 몸을 움직여 소리를 지른다거나, 옆사람에게 부상을 입힌다거나, 수면중 무의식상태에서 섹스를 한다거나 하는 정도가 되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므로 이건 치료를 받아야 한다. 병명으로는 '렘수면 행동장애'라고 한다. 꿈을 꿀때 근육이 정지되지 않고 꿈대로 몸이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가위눌림
두번째의 경우, 사유활동이 시작되었는데 근육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뭘까? 자다가 정체불명의 어떤 존재감에 억눌려 고통스러워하는 경험.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고 숨까지 막혀 여기서 빨리 벗어나지 못하면 결국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경험, '가위눌림'이다. 막연하던 그 존재감이 희미한 형상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숨막히는 고통은 점점 심해진다. 깨어나 그것을 물리치려 해보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내 몸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다행히 잠귀 밝은 사람이 옆에 있어 강제로 깨워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꽤 오랫동안 그 고통에 시달린다. 만약 거기서 깨어나지 못하면.. 실제로 죽기도 하는 것 같다. 잘 땐 멀쩡했는데 아침에 보니 죽어있었다는 사람들. 물론 의학적 사인은 무호흡증이나 심장마비로 기록되겠지만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알 수는 없다.

가위눌림을 의학적으로는 '수면 마비 sleep paralysis’라고 한다. 즉, 렘수면시에 누구나 꿈을 꾸는데, 가위눌림이란 단지 이 때 악몽을 꾸는 것일 뿐이며, 악몽때문에 뇌는 깨어났지만 빨리 연결되어야 할 뇌와 근육의 연결기전이 잠시 지연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밤에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감정의 변화에 따라 근육이 갑자기 마비되는 사람도 있다. 이걸 ‘탈력발작(atonic seizures / cataplexy)’이라고 한다. 즉 머리는 분명 깨어 있는데 마치 렘수면 때처럼 몸의 근육은 마비되는 현상이다. 낮에도 이런 증상이 있는 사람은 압도적으로 가위눌림을 많이 경험한다고 한다.


가위눌림은 뇌의 기질적 이상?
가위눌림이라는 것이 단지 뇌의 기질적 이상임을 증명하기 위해 의학자들은 노력한다. 그게 그들의 사명이고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탈력발작을 유도하고 뇌혈류 촬영장치(SPECT)로 뇌속변화를 관찰했더니 렘수면 때 몸의 근육을 마비시키도록 작동하는 세포부위에 혈류가 급격히 증가하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뇌가 잠들어 있지 않더라도 몸이 마비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생물학적 증거를 찾아낸 것이다. 가위눌림은 이와 비슷한 일이 뇌에서 일어나는 것일 뿐이라는 결론이다.

그럴 듯 하다. 그러나 이런 과학적 설명을 아무리 들어도, 이 가위눌림에 있어서는 좀처럼 깔끔하게 수긍이 가지는 않는다. 계속 이런 생각이 든다.

[잠을 자고 있는 동안 누군가에 의해 내 정신과 육체의 연결이 끊겨 정신이 육체를 제어하지 못하게 된다. 영혼이 잠시나마 육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육체로부터 자유로워진 영혼은 그제서야 다른 영혼을 볼 수 있다. 영혼 대 영혼으로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너무나도 생생한 존재감
눈 앞에 있었던 강렬하고 괴기한 그 존재감을 뚜렷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내가 누군가와 조우했었기 때문이다. 귀신과 정면으로 맞닥뜨렸던 느낌이다.


아주 예전의 일이다. 거의 6개월 동안 밤이면 매일 시골병원의 중환자실에 갔었다. 면회시간이 제한되어 있는 대형병원과는 달리, 변두리의 중소형병원은 그런 게 없었다. 따라서 매일 가서 두세시간씩 있어야만 했다. 하나의 커다란 방으로 되어있던 그 중환자실에는 혼수상태의 환자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즐비했다.

몇 달간을 심한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와 함께 그들과 같이 있었다. 그 무렵 가끔 담이 심하게 들었다. 그런데 이게 예사스럽지 않았다. 한번 닥치면 숨이 막혀 고꾸라질 만큼 극심하다. 이거 갑자기 왜 이럴까? 중환자실 보호자 중의 한사람이 얘기해 준다. ‘귀신이 붙어서 그래요 그거.. 중환자실에 오래 있으면 많이들 그래요.’

그 무렵 누군가가 날 보더니 뭐가 붙어 있다고 떼어버려야 한단다. 돈을 받는 무당이면 장삿속이거니 하겠는데 이 양반은 돈을 받는 사람이 아니다. 호기심에 떼어달라고 했다. 의식을 하나 치른 후, 세가지 꿈을 말해주면서 내가 그걸 차례대로 꿀 것이라고 한다. 세번째 꿈까지 꾸고 나면 자길 다시 찾아 오란다. 띠바 세상에 꿈을 누가 얘기 해준대로 꾸는 사람이 어딨나.. 근데 놀랍게도 그 세가지 꿈을 진짜로 차례대로 꿨다. 이런 의식을 통해 누군가를 영원히 떠나 보낸 적이 있다. 설명하기가 곤란한 불가사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