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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

성경을 욕보인 도올과 한국 기독교

인간을 훈육하는 방법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무엇일까..
부모가 솔선수범하는 가정교육, 존경받는 교사들로부터의 학교교육, 된 사람으로부터의 인생교육.. 다 좋은 훈육이지만 효율면에서 본다면 그다지 완벽한 방법들은 아니다.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은 바로 인간이 가진 죽음의 공포를 이용하여 인간을 다스리는 것이다. 즉, ‘죽음 이후’를 얘기하며 인간을 얼르는 방법이다.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여 상대방을 훈육한다? 다소 야비한 이 방법을 도대체 인간 사회의 어떤 분야가 이용할까? 그렇다. 바로 종교다. 우리가 매일 머릴 숙이는 종교의 시작은 바로 이것이다.

그렇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만으로는 종교가 이렇게까지는 창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종교가 발전한 요인은 죽음의 공포와 그를 보조할 완벽한 교보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신비한 자연현상이다.

천둥과 번개가 전기에 의한 것임을 알기 이전 사람들은 그 천둥번개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나는 아직도 번개와 천둥을 보면 신기하다) 일식과 월식이 피차간의 그림자 때문이란 걸 알기 이전 사람들은 해가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을 보고 어떠했을까? 지구상 종교의 발상지들을 보면 대부분 극도로 열악한 지역들이다. 그런 지역일수록 자연의 이상현상들은 빈번하며 신비롭다.



눈부신 과학의 시대라는 21세기에도 우린 특정 자연현상과 조우하면 아직까지도 신비감을 가진다. 북극지방의 오로라를 본 사람들이 공히 하는 얘기가 있다. ‘오로라를 보고도 종교를 가지지 않게 된다면 참 이상한 일일 것이다.’ 라고 한다. 나중에 꼭 한번 보려고 한다. 나도 그걸 보고 종교를 갖게 될지.



우리들 중엔 죽으면 천국(하나님의 나라)이나 지옥으로 간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고, 나중에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나는 법이니 좋은 일을 많이 했다면 당연히 좋은 영혼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평생을 더럽게 살았더라도 회개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기도 한다. (서로 배치되는 논리다. 하지만 둘 다 의미가 있다. 회개라는 단어의 해석에 따라 천지차이가 있긴 하지만, 일단 그것이 종교에서의 맹목적 의미가 아닌, 일반적이고 도덕적인 차원에서의 회개라고 한다면 후자의 논리도 ‘죽음앞에 선 사람들의 공포심을 덜어주는 차원’에선 꼭 필요하다 하겠다.)

누구의 말씀이든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두 스승, 석가모니와 예수의 말씀 아니든가. 이 위대한 두분 스승의 가르침이 ‘제 모습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면 세상이 시끄러울 일이 없겠으나 지금 세상은 시끄럽다. 왜냐하면 이 분들의 말씀을 '왜곡'해야만 밥을 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창궐하며 혹세무민하니 세상은 시끄럽다.

잘못 된 믿음을 강요하는 종교는 그래서 마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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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Thomas)의 영어원문을 해석해서 블로그에 올리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했다. 힘이 부치기도 했었지만 더 큰 이유는 협박메일에 기분을 잡쳤기 때문이다. ‘비난’하는 글은 무시할 수 있었으나 ‘협박’은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도올이 요한복음의 영문을 새롭게 해석하여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EBS의 영어강좌이니 분명히 영어를 공부하자는 강좌일 것이다. 그런데 아닌 모양이다. 영어강좌를 빙자해서 요한복음을 재해석하고 있는 모양이다.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그의 가공할 학문적 경지, 얄미울 정도로 뚜렷한 그의 자신감이 아니라면 결코 불가능 할 시도다. 예전에 도올이 침의 작용기전을 과학으로 밝히겠다고 유학을 갔다가 그냥 꼬리를 내린 적이 있었다. 아무것도 못 밝혀낸건지 아니면 밝혀내고도 한의사들 밥그릇을 걱정해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때 ‘천하의 도올도 식언을 하는구나’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다시 도올답다. 한의사들의 밥그릇은 걱정해 주면서, 목사들의 밥그릇을 걱정해 주지 않는 게 약간 불공정하지만.. 그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그가 또 하고 있다.


지금 도올의 입장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도올이 완전히 틀린 것일 수도 있다. 현학의 마법에 빠져 미친 짓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걸 분명히 가려내자는 것이다. 도올이 이제 명이 다한 미친놈인지 아닌지.

이건 당연히 기독교계의 몫이다. 도올의 주장이 왜 미친소리이며 어디가 어떻게 틀렸는지를 조목조목 따져 사실을 밝혀야 한다. 도올이 삿된 혀를 놀리는 사탄이라면 이 기회에 그를 아주 철저하게 응징하여 완전히 매장시켜버려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조용해진다.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 기독교계의 합리적 반론을 기대한다. 그들의 첫 공식 반응이 나왔다.
‘도올의 주장은 정통신학의 입장과 다르다’.  ?? 이게 무슨 소리지?

‘정통신학에 잘못된 것이 있다’ 고 이야길 하는 사람에게 기껏 한다는 말이
‘그 얘긴 정통신학과 다르다’ 라니..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어느 집안 족보에 일부 誤記가 있고, 또 글자를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그 집안 장손이 나서며 ‘그 얘긴 우리 할아버지 생각과 달라요’ 하는 꼴이다. 말의 수준으로만 본다면 그 장손의 나이는 세살을 넘지 못하겠다.


도올이 ‘구약폐지론’까지 들먹이자 기독교계의 반발이 더 거세어지고 논란이 확산되었다. 그러자 도올이 드디어 공개토론을 제안하였다. 다행스럽게도 기독교계에서 그것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이거 참 다행이다. 여간 기대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도올과 기독교 대표 간 불꽃 튀는 접전을 기대해 본다.


그러나 그것이 성사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기독교계에서 나서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자기 집안의 족보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달달 외우고 또 그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숙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족보의 오류’에 대하여 역사학적 사료로 세밀하게 연구한 학자와 그것을 토론해야 한다는데 이런 자리에 누가 나서려고 할까. 말싸움이라면 한국에서 제일가는 도올이 지금 우리 족보가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우기고 있는데.. 족보의 구절이나 암송하며 들이대는 것만으로도 고개를 숙이는 종친들에게 익숙하던 사람들이 과연 그 무시무시한 도올과 학문적 토론에 나서려고 할까.

어느 날 한 검투사가 나타나 ‘너희들이 강철검이라고 여기는 神劍은 사실 수수깡 칼이니 나랑 결투를 해서 어느 칼이 부러지나 보자’며 결투를 요청했다. 신검이 수수깡임을 애초부터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걸 강철검이라고 믿고 있다. 그제서야 신검을 찬찬히 살펴보니 강철검 같기도 하고 수수깡 같기도 하다. 게다가 들어보니 가뿐하다. 어? 이거 수수깡일 수도 있겠는데.. 과연 결투에 나설까?


그러나 나는 우리나라 기독교의 성숙함을 믿는다. 부디 이 공개토론 제안을 회피하거나 그냥 얼버무리며 무시하지 말고(성서는 신앙의 눈으로 봐야지...하면서), 해박하고 합리적인 학자를 내보내 복음서와 구약에 대해 도올과 불꽃튀는 논쟁을 벌여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다시는 이땅에 도올 같은 세치혀 사기꾼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고, 이번 기회에 나라를 시끄럽게 만드는 이자를 철저하게 매장시켜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