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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

너 혼자 잘해서 골을 넣은게 아니다 - 기도 세레머니

나는 미식축구 팬이다. 프로리그인 NFL 보다는 대학리그인 NCAA의 BCS를 훨씬 더 좋아하는데, 이는 대학팀들 경기에 돌발변수들이 많아 훨씬 박진감이 있기 때문이다. 프로리그에선 까짓거 경기에 몇번 져도 나중에 챔피언이 될 수 있지만 포스트시즌제가 없는 대학리그에선 한번 지면 그해 농사가 아예 끝이다. 그래서 매경기 매경기가 결승전을 방불케 한다. 전통의 대학풋볼 최강 USC(현재 1위)와 2년연속 챔피언전에 진출했던 Ohio State 대학(현재 5위)의 경기가 있는 이번 토요일, 오피스 문을 아예 닫기로 했으니 이쯤되면 난 USC Football의 광팬이라고 해도 되겠다.


NFL에는 LA 지역 연고팀이 없기 때문에 제일 가까운 San Diego Chargers를 응원한다. 그러나 USC만큼의 애정은 없는 것 같다. 강팀들이 득실대는 NFL에선 대학리그의 USC처럼 무적의 강팀이 존재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응원하는 팀이 지면 스트레스 받기 때문에 차저스에는 마음을 완전히 주지 않기로 했다. 그게 정신건강에 좋다.


한국에 있을 땐 이 미식축구라는 거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학교에 서클의 형태로 미식축구부가 있기는 했었는데 그게 럭비의 변종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미국에 처음왔을때도 당시 마이클 조던이 현역으로 있던 NBA 농구에만 관심을 뒀었을 뿐, 풋볼은 전투적인 미국 애들이나 좋아하는 무식한 경기라고 생각하며 거의 보지 않았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미국인들이 왜 그토록 이 스포츠에 열광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졌고 그래서 재미는 없었지만 억지로 풋볼 게임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 스포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 스포츠의 매력이 과연 뭐였을까.

모두는 하나를 위해서, 하나는 모두를 위해서 - All for One, One for All !

미식축구의 정신을 설명하는 짧은 표현이다. 획일적인 집단 '전체주의'의 느낌도 나지만 미식축구를 설명하는 데 이만한 표현이 없다. 팀웍이 중요하기는 모든 구기종목이 마찬가지이겠지만 미식축구에서 팀웍의 중요성은 다른 종목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미식축구에서의 팀웍은 경기의 시작이며 끝이다.

다른 구기종목은 선수들간의 몸싸움이 상당부분 금지되어 있지만 미식축구는 격렬한 몸싸움, 즉 태클이 기본이다. 다른 종목처럼 공을 발로 차거나 손으로 던지거나 무엇으로 쳐서 골에 넣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직접 들고 뛰고 던지기 때문이다.

공을 가진 우리 팀 한 선수의 전진을 위해 나머지 열명의 선수들은 몸을 날려 상대방을 태클한다. 2백킬로에 육박하는 거구들이 온몸으로 상대의 수비(표현은 수비이지만 사실 공격이다. 맹수가 먹잇감에 달려드는 듯 실로 무시무시하다 )를 막아주고 진로를 뚫어준다. 공을 가진 단 한 사람의 동료를 위해 나머지 열명은 관중의 눈에는 잘 띄이지 않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잘했을땐 전혀 표시가 나지 않지만 작은 실수라도 곧바로 실점이나 공격권의 상실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들은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

사진을 적절하게 찾지는 못했지만 이들이 벌이는 전투는 무시무시하다. 충돌로 헬멧이 날아가고, 발길에 깔려 무릎 인대가 끊어지고, 산소호흡기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척추부상으로 불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치열한 전투가 일시 멈춰질때 선수들은 넘어진 동료들을 서로 일으켜 세워주고, 다치진 않았는지 확인해 주고, 망가진 보호구를 바로 잡아주고, 서로의 등을 토닥이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서로를 격려하면서 다음 전투를 준비한다. 그런 여러 번의 전투가 합쳐져서 터치다운이 이루어진다. 그러면 모든 선수가 어울려 함께 기쁨을 나눈다. 주인공도 없고 조연도 없다. 모두가 다 똑 같은 주인공이다. 한개의 터치다운은 쿼터백이나 러닝백이나 와이드리시버가 잘나서 얻은게 아니라 열한명 전부가 똑 같은 비중으로 똑 같은 힘으로 만들어 낸 팀웍의 결과물이다. 그게 원포올, 올포원의 정신이다.

이런 장면들을 슬로우 비디오로 보면.. 정말이지.. ‘아/름/답/다’.
믈론 수백억의 연봉을 받는 자들이지만 잠시 그걸 잊은 채, 그 우락부락한 거구들의 투혼과 협동정신에 숭고함마저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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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축구보다는 덜하지만 팀웍의 중요성은 축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미들필더와 최전방 공격수는 물론 수비수와 골키퍼까지 모두 한 몸으로 움직여줘야 한다. 서로 쉴새 없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패스하면서, 상대방을 막아주면서, 누구든 상대의 골에 공을 집어넣을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 주며 서로 협조한다. 그렇게 해야만 골이 들어간다. 그래서 축구에서도 ‘꼬링’은 결코 어느 잘난 공격수 하나의 공로가 아니라 열한명 전부의 공로다. 공격수 한놈이 저 혼자 잘해서 골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이런 걸 아는 '정상' 선수들은 골을 넣고나면 일단 열한명 모두와 어우러져 기쁨을 나눈다. 골 넣은 한놈이 발광을 하면서 혼자 뛰는 걸 동료들이 기필코 잡아서 넘어뜨려 얼싸 안는 게 아마 이래서이지 않나 싶다. '너혼자 잘한게 아닌데 왜 혼자 지랄이야? 띠바시꺄' 비록 골을 넣은 건 한명의 선수이지만 혼자만 우쭐대지 않고 이렇게 다른 선수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공로도 나누는 것, 이건 축구선수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기본 예의다.

근데..
대한민국의 축구선수중엔 이런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않는 선수들이 있다. 골을 넣으면 제일 먼저 동료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것이 정상인간의 도리이거늘, 갑자기 무릎 꿇고 감사 기도부터 하는 선수들 얘기다. 골 넣고 고맙다고 자기 신께 감사하는 행위, 이건 골을 자기 혼자 잘해서 넣었다고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힘을 합해 도와준 동료들을 무시하는 큰 실례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A 매치에서 골을 넣으면 국민들은 함성과 박수로 그들의 노력과 성과를 치하한다. 그러다 골을 넣은 선수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기독교 대표선수’가 아닌 ‘대한민국의 대표선수’가 국가대항전에서 골을 넣고 그렇게 종교색을 '유난스레' 드러내며 상당수 국민들의 불쾌감을 유발시키는 저의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들은 그렇게 기도부터 한다.

(이번 대표팀에 이놈이 빠졌길래 이꼴 보지않을 것 같아서 좋아했었는데)

이때 많은 국민들은 희한스럽고 복합적인 감정에 휘말린다. 몹시 기쁘긴 하지만 동시에 기분도 좀 상하는.. 그래서 박수를 계속 치기도, 그렇다고 안칠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으로 몰린다. 우리나라가 한골 넣었으니 분명히 미치도록 기쁘지만 뭔가 기분이 확 잡치는.. 광적인 기독축구선수의 이런 추태는 국민들의 순수한 기쁨을 확 반감시킨다. 국민들의 기분은 이러거나 말거나, 그들은 이짓을 선후배로 이으며 계속한다.


종교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한국 '기독축구의 아브라함' 이영무가 예전 이스라엘에서 국가대항 축구경기를 하기 직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라운드에 무릎 끓고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에게 기도를 했다는, 그 얼굴 화끈거리는 코메디를 새삼스럽게 꺼내려는 게 아니다.

차범근이 대표팀 감독 시절 인터뷰에서 ‘승리를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솨..’라는 승리소감을 운운하다가 순수하게 국가대표팀을 응원했던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샀었던 그 개념없는 차범근 폭거를 다시 얘기하려는 것도 아니다.

우리편이 이기려면 상대편은 져야하는 게 스포츠.. 이기게 해달라는 기도가 과연 상대방 복을 빼앗아 달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 그게 얼마나 유치한 것이냐는 얘길 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 눈에 거슬리지 않게 조용히 몰래 기도하면 될걸 왜 그렇게 요란하게 재랄을 떨며 기도를 하는지, 그래야만 그들의 신은 그를 이쁘게 봐주시는 것인지, 도대체 어려서부터 어떻게 교육을 받았길래 저렇게 자동적으로 무릎꿇고 기도를 하게 된건지, 저렇게 국가 대표선수의 본분은 잊고 추악하게 선교를 해야 나중에 천당에 간다고 하는 것인지를 따지려는 것도 아니다.


극히 일반적인 ‘상식’의 문제를 이야기하려는 거다.

비록 내가 먼 거리를 단독 드리블로 뚫고 들어가 골을 집어넣었다 치자. 관중들이 내 이름을 연호하고 함성을 지르면 정신이 들락거릴정도로 기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런 경우라 해도 그 골은 결코 나 혼자만의 개인기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골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더라도 상대방 수비수들을 분산시킨 우리편 동료들의 역할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당연히 제일 먼저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는 게 도리다.

설사 저 혼자 잘한거라는 생각이 속으론 들지언정, 그래서 그 골을 넣을 수 있게 유난히 자길 예뻐해 준 자기의 신께 감사를 드리고 싶을 지언정.. 그건 반드시 동료들과 먼저 기쁨을 나눈 이후에 해야 한다. 그것이 동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고 인간된 도리이다. 만약 제대로 무르익은 선수라면 그 기도마저도 남에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할 것이다. 골 집어넣은 감사기도라는 거 자체가 다른 동료들의 도움을 은근히 무시하는 표현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올 시즌 은퇴와 복귀를 오락가락하느라 명성에 흠이 갔지만 NFL 최고의 쿼터백중의 한명인 브렛 파브다. 그는 패스 터치다운이 성공되면 리시버를 이렇게 둘러매고 공을 그에게 돌린다. 다 함께 기쁨을 나누고 공을 나누고 찬사를 나눈다. 이 선수 말고도 역사상 위대한 선수들은 모두 다 겸손했으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인간성을 가졌었다.)


지구상 어느 나라 어느 스포츠에서도 국가대표 팀 경기에서 골 넣었다고 그라운드에 꿇어앉아 기도를 하는 망발을 하는 경우는 없다. 대한민국의 축구선수들이 지구상에서 유일하다. 한국축구엔 어찌 무릎 꿇고 기도부터 해대는 놈이 왜 그렇게 많으며, 그런 놈이 어떻게 계속 국가 대표팀에 남아 이런 볼썽 사나운 추태를 계속 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저와 자기의 신밖에 모르는 놈이 어찌 팀종목의 선수로 자격이 있단 말인지.

동료들을 조금이라도 배려한다면, 지켜보는 국민들의 기분을 눈꼽만큼이라도 생각한다면, 제발 이런 추태는 그만 보여줬으면 한다. 젊은이답게 동료들과 화끈하게 기쁨을 나눈 이후.. 꼭 감사기도를 하고 싶거들랑 아무도 모르게 간단히 해줬으면 좋겠다. 하늘을 향한 간단한 손가락 키스 정도가 가장 좋겠다. 

오늘 아침 스포츠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사진, 북한전에서 한골을 넣고 어떤 놈이 기도부터 하고 있는 이 사진을 보고 잠시 지껄여 봤다. 절대로 종교 이야기는 아니었다.


네놈 기도가 끝날때까지 동료들은 그냥 기다려야 하는거냐?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인지, 누가 이리 하라고 가르쳤는지 참 고약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