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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얘기

삐꾸(Pick) 이야기 1 - 랙타임 기타연주..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기타는 원래 손가락 끝의 굳은 살로 연주하는 악기라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손가락 끝으로 줄을 퉁기면 소리는 부드럽지만 음량이 터무니 없이 작다. 그냥 혼자서 즐기거나 조그만 방에서 사람 둘셋 앉혀놓고 연주할 때엔 괜찮지만, 넓은 곳에서 연주하거나 오케스트라에 끼일라치면 이렇게 손가락으로 줄을 퉁기는 기타는 아예 소리가 없는 나무때기가 된다. 역사가 유구한 이 기타가 다른 클래식 악기들에 비해 좀 저급한 악기라는 편견이 있는데, 이것은 아마 과거 오케스트라가 음악의 주류였던 시절에 음량이 터무니 없이 작은 이 기타는 웬만해서는 오케스트라에 끼일 수 없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작은 음량때문에 무시당하던 기타를 독립된 연주악기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한 사람이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그 유명한 ‘세고비아’다.

(이름만으로도 엄청난 로얄티를 챙겼을 세고비아)

세고비아가 이룬 위대한 업적이 다른 것도 많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중의 하나가 바로 저급하다고 무시당하던 기타의 품격을 확 높였다는 것인데, 이것은 세고비아가 고정관념을 깨고 ‘손톱을 이용해서’ 연주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세고비아는 정통을 고집하는 ‘타레가’의 제자들에게 많이 시달렸다고 한다. 손톱으로 탄현하면 기타 본연의 은은하고 그윽한 소리가 없어진다고. 근데 실제로 타레가와 그의 제자들이 손가락 탄현을 고집했는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아래 사진에서 보듯 타레가의 연주자세 역시 손가락 탄현이라고는 보여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톱탄현의 시조가 세고비아라고 하니 그렇게 알기로 한다.

(그 유명한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의 타레가)

이 ‘손가락이냐 손톱이냐’의 논쟁은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이라고 한다. 지금도 손가락 탄현을 고집하는 연주인들이 있다고 하니 말이다. 양의 내장을 꼬아 만들었다는 옛날 기타 줄은 실제로 손톱으로 퉁기면 소리가 경박해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글쎄 요즈음의 최첨단 줄도 과연 그럴까? 손가락으로 하면 좀 둔탁하고, 손톱으로 하면 맑고.. 난 이것밖에는 모른다. 하지만 손가락 탄현 전문 연주인이 치고, 또 그걸 전문가가 들으면 진짜로 기타의 깊은 맛을 내는 소리가 날수도 있겠다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여기까진 나일론 줄의 클래식 기타 얘기였고..


자.. 이제부턴 쇠줄 어쿠스틱 기타다. 과연 이 어쿠스틱 기타도 클래식기타처럼 손가락으로 탄현하면 기타 본연의 은은한 소리가 나는 걸까?

아니다. 애당초 이 어쿠스틱 기타는 Pick, 소위 ‘삐꾸’를 이용하게끔 만들어진 기타다. 삐꾸를 이용해서 멜로디 연주를 하거나, 삐꾸를 이용해 스트록이나 아르페지오로 연주를 한다. 이게 어쿠스틱 기타연주의 정상모습이다.

근데 이 어쿠스틱 기타를 클래식 기타처럼 연주하면 어떨까? 즉 삐꾸를 쓰지 않고 클래식기타처럼 손가락 연주를 하는 경우 (이게 바로 Finger Style Guitar) 이 경우에도 손가락 끝 살이냐 손톱이냐 논쟁의 여지가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나일론 줄의 경우엔 손가락으로 탄현했을 때 은은한 맛이 혹시 있을런지 모르지만, 쇠줄기타는 전혀 아니다. 물론 쇠줄기타를 손가락 탄현으로 연주하는 고급 연주자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건 프로들의 얘기, 우리 같은 보통사람에겐 어불성설이다. 손가락 끝 굳은살로만 탄현했을 경우 가슴 답답한 둔탁하고 빈티나는 소리만이 난다. 전문가들에게도 어쿠스틱 기타의 핑거스타일 기타연주는 손톱 탄현이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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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은 늘 그저 그랬지만 기타를 알고 살아온 지가 어언 삼십몇년.. 손톱 탄현을 기본으로 알고 지내왔다. 한번도 그게 문제가 된 적도 없었다. 근데 나이가 들어 손톱이 약해지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기타줄에 닿는 손톱부분에 작은 흠집이 잘 나는 것이다. 그 채로 탄현을 하면 상당히 거슬리는 잡음이 섞이는 정도의 흠집. 하지만 결이 고운 줄로 약간 다듬어 주고 며칠만 기다리면 다시 손톱이 자라주니 큰 문제는 되지 않았었다. 손톱 다듬는 데에 들이는 시간이 좀 더 많아진 것이 귀찮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어느 날 손톱을 손질하면서 내 손톱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 세번째 손가락 손톱의 앞 부분이 안으로 굽은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기타를 칠 때 손가락의 탄현이 예전처럼 부드럽지 않고 뭔가 미세하나마 걸리는 느낌이 있었던 것을 난 그저 연습부족 때문이라고 생각 했었는데, 알고 보니 바로 이 구부러진 손톱 탓이었다. 손톱과 줄이 맞닿는 각도가 뒤틀리다 보니 탄현에 걸리적거렸던 것이다. 흠집이 생기던 손톱이 바로 이 세번째 손톱이었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그 구부러진 모습을 잡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진 없다.)

그래서 해결책을 찾아봤다.
‘손톱을 좀 짧게 깎고 기타줄과 접촉하는 손톱의 안쪽 라인을 약간 예각으로 다듬는 것, 그리고 클래식 기타를 칠때처럼 손목을 약간 직각으로 꺾어 손톱이 줄과 닿는 각을 가능한 한 직각이 이루어지게 해 주는 것.’ 이렇게 하니 불편하나마 큰 지장은 없었다.

오매불망하던 ‘Ragtime 랙타임’ 곡들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종일관 빠르고 강한 피킹을 해야만 하는 곡들. 강한 피킹이 없으면 곡의 느낌이 죽어버리는 랙타임 곡들. 문제는 이때부터 심각하게 발생하기 시작했다.

(혼자 연주하지만 두 사람 이상이 연주하는 듯 들린다는 의미) 

랙타임에선 연주 내내 Palm Mute (새들부분에서 손바닥의 밑둥을 4,5,6번 줄에 살짝 대어 베이스의 큰 울림을 죽여주는 것) 라는 걸 해야만 한다.


이 팜뮤트를 하려다 보면 손톱과 줄과 닿는 각도가 약간 바뀐다. 팜뮤트 없이 핑거링을 한다면 기본적으로 이런 자세다.


이걸 클래식 기타 하듯이 좀 오버하면..


근데 팜뮤트를 하면 이렇게 바뀐다.


손톱의 왼쪽 옆라인에 줄이 약간 크로스 되는 듯 닿는 것이다. 문제는 이때 발생한다. 다른 손톱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안으로 약간 구부러져있는 세번째 손톱.. 이 손톱은 거의 손톱의 옆날로 줄을 90도 찍는 듯 하게 된다. 당연히 이 손톱이 살아남질 못한다. 금새 손톱의 왼쪽부분이 v자로 패여버린다. 인정사정 없다. 패여버린다. 그래서 그걸 매끈하게 다듬으면 손톱전체가 짧아져서 일주일 이상 기타를 놓고 지내야 하고.. 다시 써먹을만큼 길러서 한두번 치면 다시 패이고..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손목과 손가락의 각도를 조정해서 이걸 모면해보려고 꽤나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손톱보호를 위해 손의 각도를 약간 바꾸면 팜뮤트가 엉성해지고, 약하게 피킹을 하면 곡의 분위기가 살지 않았다. 손톱을 좀 더 짧게 다듬어서 손톱의 파손을 최대한 피해보려고 했지만 그럴 경우 소리가 너무 답답했다. 뭔가 다른 방법을 빨리 찾아야만 했다.


→ 삐꾸(pick) 이야기 1 – 랙타임 기타..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 삐꾸(pick) 이야기 2 – 핑거픽과 손톱 강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