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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얘기

밴조 도전기 13 - 장식품이 되어버린 밴조

3년동안 밴조는 그냥 '장식품'이었다. 밴조 도전을 접으면서 아예 밴조를 케이스에 넣어둘까 하다가 예전 드라마 '커피프린스'가 생각 나 밖에 계속 세워뒀었다. 커피프린스에서 극중 작곡가가 자기 작업실에 밴조를 하나 세워뒀었는데 상당히 멋진 장식품이었기 때문이었다. 꽤 오랫동안 밴조는 악기가 아니라 그저 장식품으로 그렇게 서 있었다.

밴조를 볼때마다 부끄러움과 아쉬움이 있었다. 요란스럽게 시작했다가 불과 일년여 만에 꼬리를 내려버렸던 역사때문이다. '폭발적으로 달리는' 밴조 특유의 피킹에 매료되어 야심차게 시작했었던 악기였었지만 그 과정이 생각보다 힘들었었다. 비록 기타의 쓰리핑거 주법에 오랜기간 익숙해서 처음 배우기에 수월했던 점도 있었지만 가르쳐주는 사람 없이 혼자 시작했었기 때문에 어려웠고, '익숙한 기타와의 오버랩'때문에 힘들었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상한 모양에 이상한 무게중심'을 가진 밴조라는 악기 자체의 불편함이었다.

이렇게 들어도 힘들고 저렇게 들어도 힘든 밴조. 큰맘먹고 연습을 시작해도 삼십분을 버티기가 어려웠다. 한번 잡으면 두세시간도 연습하는 기타에 비하면 밴조는 잡고 있는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었다. 일년정도 미치도록 열심히 하면 웬만큼 자유롭게 치는 수준에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연습시간이 워낙 짧다보니 연주실력이 생각만큼 빠르게 늘지 않았었다. 연주가 늘지 않으니 자꾸 기타와 비교를 하게되고.. 결국 난 적당히 '남들에게 보여줄 정도'의 열곡정도의 레퍼터리로 타협을 해버리곤 밴조를 접었었다. 그리곤 밴조를 하느라 일년정도 놓고 있었던 조강지처 '기타'에게로 돌아갔었다.  


장식품 밴조.. 장식품으로 보기에 예쁘려면 밴조에 멜빵이 있으면 안된다. 지저분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3년 내내 멜빵을 풀지 않고 그대로 뒀었다. 또 오랜기간 연주하지 않을거면 줄을 풀어둬야만 했었다. 하지만 난 3년 내내 줄을 풀지 않고 튜닝된 상태로 놔뒀었다. 진짜 그렇게 무장을 완전해제했다간 평생 다시는 밴조에 손을 대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마 내 자신에게 스스로 던지는 주문이었을 거다. '난 포기한 게 아냐 잠시 쉬고있을 뿐이지..'


그러던 어제.. 무려 3년만에 밴조를 다시 꺼내 들었다.

먼지투성이인데다가 줄도 약간 녹슬어 있다. 또 오랫동안 줄을 매어둬서인지 줄이 프렛에서 많이 떠 있다. 줄을 튕겨봤다. 소리가 둔탁하다. 줄이 녹이 슬어서 그런가?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아참 밴조는 손가락 전부 pick을 끼우는 거지..' 그걸 잊고 있었다는 거에 빙그레 웃음이 난다. 기타용품을 넣어두는 박스를 뒤졌다. pick들만 모아둔 작은 지퍼백안에서 밴조 pick을 찾아냈다.

pick을 손가락에 끼우고 다시 피킹.. 소리가 낭낭하다. 이게 밴조소리다. 근데.. 앞이 깜깜하다.
기억나는 곡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일년을 폭풍처럼 매달렸었지만 그후 삼년을 통으로 쉬면서 머리에 아무것도 남아있는 게 없었다. 아뿔싸 이럴 수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단 한곡도 생각나지 않았다. 심지어 제목들까지도. 악보를 보면 생각이 나겠지.. 근데 그놈의 악보들을 어따 뒀는지 못 찾겠다. 일반악보가 아니라 손바닥만한 악보들이라 어떤 작은 박스에 넣어뒀을텐데 그걸 어따 뒀는지 모르겠다. 한참만에 기타 악보철에 끼워져 있는 밴조 악보 하날 발견했다. Foggy Mountain Breakdown.. 밴조를 그만두기 직전 마지막으로 했었던 곡이었다. 악보를 보고 튕겨보니 조금씩 기억이 난다. 그래 이 곡이 이런 곡이었지, 밴조가 이런 악기였었지.. 해보니 된다. 기억이 되살아나고 속도도 어느정도 다시 붙고..

하지만 삼십분정도만에 또 다시 부닥친 벽, 넘지못하고 포기했던 그 산.. '이상하게 생겨서 무게 중심 이상한 밴조의 불편함'.. 번쩍 들고 운지하는 왼쪽팔이 아프고, 밴조모서리와 닿는 오른쪽 팔뚝이 아프고 저리고, 무거운 밴조를 걸고 있는 목과 어깨가 아프다.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전보다 훨씬 더 불편하다.
 
정말 사랑하지만..
여전히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밴조다.

Foggy Mountain Breakdown



Dueling Banj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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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조 도전기 12 – 도망자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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