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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생각

진돗개에 대한 불편한 진실

진돗개, 악희(惡姬)
난 양희은의 노래 ‘백구’를 들으면 가슴이 먹먹하다. 비슷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개를 좋아하던 내가 처음으로 새끼 때부터 정성을 들이며 키웠던 개는 바로 진돗개이다. 70년대 중반 흑석동 시절, 2만5천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순종 혈통서와 함께 진돗개 암컷 새끼를 분양받았었다. 이름은 악희(惡姬)로 지었다. 나쁜 기집애.. 메리 해피 쫑이 개 이름의 대세이던 당시로선 획기적인 이름이었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애견센터 벽에 붙어있던 포스터에서 본 진돗개 챔피언 이름 ‘악돌 마운틴’을 그저 흉내내어 지은 것이었다. 악희가 다 자라면 악돌 마운틴처럼 위풍당당한 진돗개가 되리라고 기대했었던 거다. 큼직하게 벽돌로 지었던 악희의 집에 같이 들어가 놀기도 할만큼 정을 주며 악희를 키웠다.


악희는 약간 다르게 생겼었다
하지만 성견이 된 악희는 내가 기대하던 진돗개의 모습과는 약간 달랐다. 혈통서가 있는 순종 진돗개인데도 체격이 약간 왜소했고, 색깔도 흰색과 누렁색의 중간정도였다. ‘황구’라고 하기엔 너무 흐리고 ‘백구’라고 하기엔 너무 누런 그런 색. 또 원래 진돗개는 꼬리가 왼쪽으로 말려 넘어가야 한다는데, 악희는 오른쪽.. 인정하긴 싫었지만 사진에서 보던 위풍당당 진돗개들과는 약간 다른 게 사실이었다. ‘얘 혹시 순종 아닌 거 아니야?’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 말.. 정말 듣기 싫었다. 물론 의혹은 있었다. 속아 샀나?.. 띠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악희를 정말 사랑했었다.

하지만 악희와의 인연은 그리 길지 못했었다. 때가 되어 악희가 임신을 해서 새끼를 낳았었는데, 안타깝게도 새끼가 모두 죽은 채로 태어났었다. 강아지들을 기대했던 나도 크게 실망했었지만 악희가 받은 충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죽은 새끼들이 그리웠던지 악희는 며칠 밤낮을 끙끙대며 울기만 했었다. 악희는 내가 불러도 나오지 않고 집안에서 울기만 했었다. 한강 중지도 한쪽 끝에서 조그맣게 불러도 쏜살같이 달려오던 악희였는데. 


슬픔이 된 악희
그러던 어느 날 악희가 없어졌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새끼들을 찾으러 나간 모양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난 무조건 밖으로 나가 어두워질 때까지 악희의 이름을 부르며 돌아 다녔었다. 흑석동은 물론 언덕 넘어 상도동까지도 돌아다녔다. 악희와 갔었던 모든 곳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악희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악희와의 이 느닷없는 이별은 악희에게 정을 주던 소년에겐 큰 아픔이었다.

그 무렵 누군가가 그랬었다. ‘똥갠줄 알고 개장수가 잡아갔을 거야.’ 개장수가 잡아가다니.. 보신탕용으로 잡아갔다는 말 아니던가. 생각만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게다가 그 말은 악희가 진돗개처럼 생기지 않아서 그랬다는 말이기도 했기 때문에 화가 더 났다.   

하지만 난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악희는 누가 뭐래도 '멋진 진돗개'니까 누군가 데려가 진돗개로 잘 키우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다만 그 집이 대문이 잠겨진 집이라 내게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라 믿었다. 갑자기 사라져버린 진돗개 악희는 이렇게 아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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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nel Club에 등록된 진돗개
지난 2005년 5월, 국내 언론은 진돗개에 대한 소식 하날 전했다. 2005년 5월10일, 3년간의 심사 끝에 영국의 The Kennel Club이 드디어 한국의 진돗개를 독립품종으로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이걸 두고 ‘우리의 진돗개가 드디어 세계의 명견으로 인정’을 받았느니, ‘품질을 보증하는 보증서’니 하며 난리를 떨었었다. 그래서 나는 이게 우리 진돗개가 사상 ‘처음으로’ 세계기관의 인정을 받아 처음으로 공식등록이 된 것인줄 알았었다.

하지만 알아보니 진돗개가 케널클럽에 등록이 된 것은 이게 처음이 아니었다. 1998년 1월에 미국 UKC(United Kennel Club)에 이미 진돗개가 등록되었었다. 미국 케널클럽에 이미 등록이 되어있었는데, 영국 케널클럽에 등록한 걸 두고 왜 이리 호들갑을 떤단 말인가. 이름이 같은 Kennel Club인데 한군데 등록하면 다른 곳에 저절로 등록되는 시스템이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케널클럽이란 곳이 대관절 어떤 곳인지 궁금해졌다.

케널클럽이란 개의 혈통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단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통일된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즉, 여러 나라에서 여러 개의 케널클럽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채제인 것이다. 따라서 어느 한곳에 등록했다고 그것을 공유하지는 않고 있었다. 영국의 The Kennel Club(1873년 설립)을 필두로 미국의 AKC(American Kennel Club1884년 설립) 그리고 미국의 UKC(United Kennel Club 1898년 설립)가 영향력이 큰 메이저 케널클럽이며, 그 외 각 나라마다 고유의 군소 케널클럽들이 있었다. 진돗개가 그런데에 등록이 되어있는지 아닌지는 찾아보지 않았다.

이 케널클럽의 시초는 영국이다. 시작은 1873년.. 우리 조선시대에 영국에선 개의 혈통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단체가 생겼다니 ‘앵글로색슨의 앞서감’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그래서 이름에서 보듯 영국의 케널큽럽은 브리티쉬 케널클럽이 아닌 그냥 ‘The’ Kennel Club 이다. 역사와 권위 면에서 자기네가 으뜸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모양이다. 자기네들이 인정한 개의 종류 수도 이곳이 가장 적다고 한다. 그만큼 심사가 까다롭다는 얘기이겠다. 하지만 역사 면에서는 영국의 The Kennel Club(1873년)이 最古일지 몰라도, 규모나 영향력으로는 미국의 AKC에 훨씬 뒤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영국 KC에 등록된 걸 마치 모든 것을 다 이룬 것처럼 호들갑을 떤 것은 일종의 허위보도였다.

또 The Kennel Club이든 AKC에 등록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세계의 명견 보증서’라는 것 역시 허무맹랑한 소리다. ‘독립 품종’이라는 것과 ‘명견’은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등록에 가장 중요한 요건이 ‘몇대의 번식을 통해도 품종이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독립품종이라고 그 개가 명견인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애견 후진국의 멍에에서 벗어나자
하지만 어찌 되었든 이 ‘진돗개의 독립품종 등록’은 큰 의미가 있다.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 제고에 보탬이 된 것이다. '개를 잡아먹는 야만적인 나라'인 대한민국이 사실은 Jindo라는 개를 보존하고 유지해온 '애견국'임을 널리 알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애견 후진국이 갑자기 애견국이 된 것은 아니다. 개장국을 먹는 사람이 아직도 무수히 남아 있으니 말이다.

아직 개고기를 드시는 분들께 권한다. 올해 초 한국에서 촬영 방영되었던 '하이디의 위대한 교감'을 꼭 빌려다 보시기 바란다. sbs 동물농장에서 몇개의 시리즈로 방영했던 프로그램인데 animal communicator 하이디가 동물과 의사소통하는 모습이 나온다. 인간과 똑같이 생각하고 사랑하고 걱정하는 동물의 모습이 나온다. 너무나 충격적이다. 동물에게도 감정이 있다고는 생각했었지만 이렇게까지 인간과 비슷하게 느끼고 교감하는 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었다. 각설하고..  


에버랜드의 힘
영국 KC에 진돗개 등록을 이루어 낸 곳은 삼성 에버랜드였다. 진도군청에서 진돗개를 공급받아, 영국의 저명한 번식전문가(breeder)인 Meg Carpenter를 통해 일을 추진했다고 한다. 2002년 8월부터 여섯마리의 진돗개가 영국으로 갔고, Kennel Club관계자들은 진도를 방문, 진돗개의 관리 실태를 점검했다. 그래서 진돗개의 우수성에 감명받은 심사위원들이 진돗개를 독립품종으로 등록시킨 거라고 했다. 하지만 간과해선 안될 부분이 있다. 바로 삼성의 힘이다.

삼성은 그 3년간 영국 Kennel Club이 주최하는 영국최대의 Dog Show인 Crufts Dog Show의 스폰서를 맡았었다. 이 과정에 진돗개가 독립품종으로 등록된 것이다. 다른 개들은 4~5년이 걸려도 심사자격을 얻을까 말까 하다는데 진돗개는 3년만에 등록을 이루어냈다. '진돗개의 힘'이라기 보다는 '삼성의 힘'이라는 걸 부인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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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진돗개의 이미지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의 Dog Whisperer라는 프로그램에 진돗개가 나온 걸 본적이 있다. 너무 사나워서 주인이 쩔쩔매다가 전문가에게 의뢰한 그런 개였는데, 내가 보기에도 그 녀석은 심했다. 어렸을 때부터 키운 개가 아니라서 화가 나면 주인에게 달려들기까지 했던 것이다. 주인인 백인부부가 착했기에 망정이지 보통사람들 같았으면 그 진돗개는 바로 쉘터에 보내져 운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그때 그 주인이 ‘진돗개는 너무 사나워서 키우기 어렵다’라고 말했고, 그 프로그램의 진행자도 그에 수긍하는 대답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거의 모두가 보는 그 프로그램, 수도 없이 재방송되는 그 프로그램에서 ‘Korean Jindo는 너무 사납다. 성질이 더러워서 주인도 문다’라고 공식적으로 확인해준 셈이 된 것이다.

진돗개 세마리면 호랑이를 잡는다느니, 한 주인에게 충성을 바치기 때문에 주인이 바뀌면 절대로 새주인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느니, 회귀본능이 강해서 다른 지역으로 보내도 언젠가는 원래 집으로 돌아간다느니.. 우리가 예전부터 들어온 진돗개에 대한 말들이다. 막연하나마 진돗개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용맹스런 우리나라의 개.. 그러나 이건 우리들만의 생각이었다.

미국인들은 지나치게 까다로운 개, 유난스런 개, 사나운 개를 싫어한다. 그러나 우리의 진돗개는 사실 사납다. 이 사나운 성격은 분명히 진돗개가 세계로 뻗어나가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 현대자동차가 처음으로 미국에 진출했을 때 싸구려 차라는 이미지로 고생한 것처럼, 진돗개도 그렇게 사나운 개라는 이미지로 굳어질까 안타까웠다.


진돗개를 인정하지 않는 AKC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애견단체인 미국의 AKC(American Kennel Club)는 아직까지도 진돗개를 독립된 품종(Recognized Breeds)으로 인정하지 않고, 조건부 소수품종인 FSS 품종(Foundation Stock Service® Breeds)에 분류하고 있다.

FSS에 분류했다는 뜻은 독립품종으로 인정받기에는 아직 여러가지로 모자라니 앞으로 품종관리에 더 신경쓰라는 뜻이다. 유전자검사까지도 도입한 최첨단의 AKC가 어엿한 독립품종인 진돗개를 왜 이렇게 홀대하는 걸까?


우리 악희는 순종이었던게 맞다. 진돗개는 아직 형질고정이 안되어 있다
놀랍게도 진돗개는 어이없게도 아직까지 형질고정이 안 된 상태라는 거였다. 형질고정이 안되어 있다는 뜻은 진돗개끼리 교배를 시켜도 아직은 전형적인 진돗개만 나오는 게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순종 진돗개끼리의 교배에서도 좀 이상하게 생긴 진돗개가 나오는 게 이런 이유였다. 우리 ‘악희’가 순종 혈통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진돗개와 다르게 생겼던 것이 바로 이런 이유였다.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이야기일까? 우리의 진돗개는 과연 뭘까?

불과 오십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에게 개라는 것은 어떤 품종이 아니었다. 그냥 '주변에 있는 개'였다. 혈통이나 품종이란 개념은 아예 없었던 것이다. 그저 진도에 사는 개는 진돗개, 풍산에 사는 개는 풍산개였다. 이러이러하게 생긴 게 진돗개가 아니라, 진도에 사는 개는 전부 진돗개였던 것이다.

솔직히 말해보자.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실 진돗개나 똥개나 생긴 것에 그리 큰 차이가 없다. 얼핏 보면 그냥 똥개고 자세히 봐야 진돗개다. 이건 한국의 개들뿐만이 아니라 중국의 개, 일본의 개들도 다 마찬가지이다. 모두 다 비슷하게 생겼다. 호주에 있는 야생개 딩고와도 닮았다. 예로부터 아시아 동쪽에 살던 개들의 전형적인 모습인 거다. 

풀어 기르는 개들은 상대가 ‘개’이기만 하면 교배를 한다. 이러다 보니 자연상태의 개에게 혈통이나 품종이 있을 턱이 없다. 그래서 동아시아의 토종개들이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거다. 솔직히 말해 한국의 진돗개나 일본의 무슨무슨 '이누'들의 모습도 거의 비슷하다.

그러다보니 한국에선 '진돗개 혈통 무용론'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혈통이란 완전 격리된 상태에서 계획적 번식을 해야만 생기는 것인데 진돗개에겐 아직 그런 형질고정을 위한 인위적 번식과정이 없었으니 혈통이란 가당치 않다는 뜻이다. 물론 이게 나쁜 뜻만은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노력하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뒤에 다시 애기한다.

AKC가 진돗개를 아직 독립품종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를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안타깝지만 받아들여야 할 불편한 진실이었다. 국내 진돗개 전문가의 쉬운 설명이 있길래 요약 인용한다.


[진돗개는 ‘품종’이 아니다. ‘진돗개는 자연견종’이다. 개에 대한 모든 인식의 접근은 ‘가축’이란 개념에서 출발한다. 즉, 교배와 번식에 인간이 개입한 ‘가축’이란 의미이다. 반면 자연견종이란 견종 형성에 인간이 개입하지 않은 걸 말한다. 따라서 인간이 개입하지 않은 ‘자연견종’과 인간이 개입한 ‘품종’의 개념은 확실히 다르다. 진돗개가 자연견종이란 것은 진돗개라는 견종의 형성에 인간의 손이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생물학적으로 말해서 지리적 또는 기타 자연 환경의 고립에 의해 형성된 동물의 종에게는 ‘품종’이나 ‘순종’의 개념을 쓰지 않는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사자, 아마존의 악어들을 품종 또는 순종이라 하지 않는다. 품종과 순종이란 단어는 가축의 범주에서 사용되는 개념이다. 세퍼트, 푸들 같은 것이 개의 품종이며 순종이다.

순종이란 그 외모의 생김새에서 거의 동일한 특성을 유전한다. 성품에서도 특징적인 성품을 유전하는 것이 상례다. 이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이런 내적 외적 특성들을 모아 유전적, 혈통적으로 고정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진돗개와 비슷한 형성과정을 거친 허스키나 맬러뮤트 같은 견종도 이런 인위적 선택번식의 과정을 거쳤다. 그래서 이런 개들이 붕어빵 같은 외모의 유전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진돗개에는 개의 품종 즉 순종이란 개념을 적용시킬 수 없다. 진돗개는 분명 자연 환경적 고립에 의해 자연 발생적으로 그 종이 형성되었다. 우리는 그 어느 시절에도 이 개의 외형적 내성적 특질을 보호하기 위해 인위적 선택번식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진돗개는 순종이 아니며, 아직까지는 자연의 한 원종이라는 생물학적 인식이 정확하다. 비슷한 유전자 풀을 가진 한 종의 집단인 것이다. 

진돗개에 대한 인식의 혼란이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우리는 자연의 원종인 진돗개를 가축의 순종 개념으로 파악하는 큰 착오를 범하고 있다. 겹개, 홑개, 후두형, 각골형, 통골형, 썰개, 뻘개 등 개 품종으로써 견종 분류의 상식적 기준의 선을 넘나드는 모든 인식의 오류가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미 진돗개는 그 수가 정확하게 파악도 안될 만큼 많이 보급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아직 그 형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보급되어 있지 않다. 이런 상황의 한계가 끝없는 혼란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린 앞으로 우리의 진돗개를 보편적 가치를 지닌 순종의 개로 만들어 내야 한다. 동네 똥개들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절제되고 합리적인 얼굴과 체형미에서 나오는 품위있는 생김새와 특징적 성품을 지닌 개를 번식해내야 하는 것이다.]



너무 일찍 등록한 진돗개
나 어릴적 진돗개는 분명히 황구와 백구 두 종류였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씨애틀 진돗개때문에 이것저것 알아보다 진돗개의 종류에 네눈박이 블랙탠(Black/Tan)과 흑구 진돗개라는 게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어떤 곳에는 이 외에 '회색' 진돗개도 있다고 되어 있었다. 진돗개의 소개에서조차 단체마다 통일이 안되어 있었다.

시애틀 진돗개, 블랙탠도 인위적 브리딩에 의해 생긴 게 아니었다고 한다. 우연히 생긴 변종이란다. 따라서 블랙탠끼리 교배를 시켜도 새끼가 전부 블랙탠이 나오는 게 아니란다. 황구도 섞여 나오고 백구도 섞여 나온단다. 때에 따라선 블랙탠이 한마리도 나오지 않기도 한단다. 그랬다. 진돗개는 아직 ‘품종’이 아니었다. 허탈했다.

아직 혈통고정이 안된 진돗개를 우린 너무 서둘러서 등록을 했다. 이게 마음에 걸린다. 두고두고 진돗개의 발목을 잡을 것 같다. 이건 진돗개 한 품종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 애견시장에서 한국 이미지의 문제이다. 품종고정도 안된 개를 억지로 우겨서 '코리언 진도'라고 등록한 꼴이지 않은가. 


블랙탠으로 다시 시작하자
하지만 늦었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국적불명의 이상한 개를 만들어 놓긴 했지만 삽살개라고 복스럽게 생긴 개를 만들어 낸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개 브리딩 실력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러니 뜻만 모아진다면 우리도 멋진 진돗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어려움이 많을거라고 한다. 이미 흩어져 나간 진돗개의 개체수가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세계단체에 등록된 진돗개의 특징을 고쳐나가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다.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도리가 없다. 이제부터라도 진돗개를 우리의 개로 다시 만들어 나가야 한다. 

개인적인 바램이 있다면, 형질을 고정시켜 나가는 앞으로의 과정에서, 똥개랑 구분이 어려운 백구나 황구보다는 보기 좋은 블랙탠(black/tan)을 추천한다. 똥개처럼 생긴 황구와 백구는 차라리 그냥 없애고, 이 블랙탠만을 살려 진돗개의 형질로 고정시켜 나갔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몸통과 다리가 조금 더 굵어졌으면 좋겠다. 비슷한 크기로 비슷하게 생긴 허스키와 비교해서 우리 진돗개가 빈티나게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몸통과 팔다리가 가늘어서.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지금의 가느다란 몸통과 다리를 가지고선 영원히 동네의 '똥개'수준을 벗어나기 힘들다. 우리 진돗개의 몸통과 다리굵기는 반드시 개량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성격'도 좀 유연하게 교정되었으면 좋겠고..

앞으로 몇십년이 걸려야 할 과정이지만 만약 이렇게만 된다면, 우리 진돗개는 분명히 허스키를 능가하는 멋진 개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어야 시애틀의 이 네눈박이 자매처럼 주인이 없어 버려지는 불행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